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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아라 작성일20-10-17 10:04 조회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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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해 나갈진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 뉴시스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16일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된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옥중 입장문과 관련해 "만약 사실이라면 이번 사건은 김봉현의 사기 사건이 아니라 검찰 게이트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강 전 수석은 이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김 전 회장의 입장문을 언론 보도를 통해 봤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전 회장은 최근 법정에서 '이강세 스타모빌리티 대표를 통해 강 전 수석에게 5천만원이 전달된 것으로 안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고, 강 전 수석은 이에 대해 적극 부인해 왔다.

다만 김 전 회장은 이번 입장문을 통해 '강기정 수석을 잡아달라'는 한 변호사의 요구가 있었다고 밝혔다.

전관인 A 변호사가 '서울남부지검의 라임 사건 책임자와 얘기가 끝났다. 여당 정치인들과 청와대 강기정 수석을 잡아주면 윤석열 (검찰총장에) 보고 후 보석으로 재판을 받게 해주겠다'고 말했다는 게 김 전 회장의 주장이다.

강 전 수석은 "이번 사건은 (야당이 주장하는) 권력형 게이트가 아니라, 사기 사건을 정치권의 많은 사람과 연동하려 하는 검찰 게이트 아닌가 싶다"며 "검찰개혁을 좌초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고 강조했다.

그는 "김봉현 사기인지, 검찰 게이트인지 진상이 밝혀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추후 대응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김봉현의 입장문에 나온 검사와 변호사가 누구인지 찾아볼 것"이라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아가 강 전 수석은 "저는 지난해 청와대에서 이강세 대표를 만난 것을 일찌감치 인정하는 등 협조할 것은 다 했다"며 자신을 둘러싼 금품 수수 의혹에 대해 거듭 부인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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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게티이미지뱅크

미국의 버몬트주(州)가 내년부터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관내 공립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무료로 콘돔을 나눠주기로 해 화제다.

미국 50개주 가운데 처음 실시되는 이번 정책은 상당수 중고생들이 잦은 성관계를 갖고 있어 자칫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하거나 성병에 걸릴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17일 폭스뉴스와 버몬트퍼블릭라디오에 따르면 공화당 소속 필 스콧 버몬트 주지사는 지난주 관내 교육 기관들이 내년 1월1일부터 중고생들에게 무료로 콘돔을 이용토록 하는 내용의 법안에 서명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교육 기관들은 각자 콘돔 제공 방법을 마련해서 시행하면 되는데, 콘돔은 학교 보건실을 포함해 학생들이 안전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비치해둬야 한다.

주 정부 차원에서 중고생에게 무료로 콘돔을 제공키로 한 것은 미국 50개 주 가운데 버몬트주가 처음이다.

미국에서 개별 학교 단위로는 콘돔을 나눠주는 곳이 있다. 미국 전체 고교 7.2%와 중학교 2.3%가 학생에게 콘돔을 준다.

무료 콘돔은 ‘의도치 않은 임신과 성병 감소’가 목적이다.

법안을 발의한 토퍼 맥폰 버몬트주 상원의원(공화)은 “(학생들이) 낙태를 할지 말지 선택하는 상황에 맞닥트리지 않도록 자신을 지킬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버몬트주 보건부 조사를 보면 고교생 31%가 ‘최근 3개월간 1명 이상과 성관계를 가졌다’고 나온다. 그런데 이들 중 6%는 피임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버몬트주 고교생의 주된 피임법은 콘돔(32%)과 피임약(32%)이었다.

무료 콘돔이 학생들의 성관계를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파워볼

반(反)낙태단체 ‘버몬트생명권위원회’는 무료 콘돔 법안을 “위험한 시도”라고 규정하고 “결국엔 낙태율을 높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폭스뉴스는 재작년 학술지 ‘미국건강증진’에 실린 논문을 인용해 “콘돔 무료 제공은 학생들의 성관계를 늘리지 않고 성관계를 하는 학생의 콘돔 사용률만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온라인뉴스팀 sportskyungh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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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윤의 슬픈 중국]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시진핑 정부의 풍자. 반체제 만화가 바듀차오(Badiucao)의 작품/ foreignpolicy.com>

송재윤의 슬픈 중국: 문화혁명 이야기 <27회>

독재정권은 법을 악용한다. 자기편의 들보는 덮어주고, 반대편의 티끌은 처벌한다. 반대세력은 억압하고, 비판집단은 탄압한다. 의법(依法)통치를 가장하지만, 독재정권의 법률행위는 편파적이고, 파당적이다. 부조리하고, 비논리적이다. 독재자는 법의 보편성, 공정성, 합리성을 무너뜨린다. 법치의 파괴가 바로 독재의 시작이다.

법에 따라 집행한다며 반대세력만 골라 처벌

사법적 “내로남불”을 학술용어로는 선택적 법집행(selective enforcement of law)이라 한다. 한비자(韓非子)가 제시한 전제군주의 통치술이다. 가혹한 법령을 장시간 집행하지 않으면, 백성 대부분이 범법자가 되고 만다. 그때 군주는 반대자만 표적삼아 처벌할 수 있다. 한비자에 따르면 “이형거형(以刑去刑)”이다. “형벌로 형벌을 없앤다!”는 뜻! 본보기로 몇 명만 처벌하면 모두가 복종한다는 이야기다.

선택적 법집행은 오늘날 중국공산당의 통치술이다. 시진핑 정부의 반부패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중국의 법률은 극히 엄격한데, 1980년대 이래 법집행은 대체로 느슨했다. 그 결과 대부분 공직자들은 “부패”를 생활화했다. 2012년11월 “호랑이와 파리 떼”의 척결을 목표로 중국정부는 연평균 50여명의 고위직 간부를 구속했다. 당·관·군 고위직의 30퍼센트가 부패 혐의를 받고 있는 현실에 비춰보면 조족지혈이었다. 게다가 부패혐의로 처벌된 최고위직 부패관료 다섯 명은 모두 중국공산당 반(反)시진핑 세력의 핵심인물들이었다.

베이징 인민대학의 장밍(張鳴, 1957- ) 교수는 반부패 운동을 주도하는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중공중앙의 지침만을 따른다”고 비판했다. 베이징 대학의 허위에팡(賀衛方, 1960- )교수는 진정한 “반부패개혁”의 실현을 위해선 절대다수의 관원들이 사형을 당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법치의 파괴를 규탄하는 양심의 경고였다.


<문혁시절 전형적인 비투(批鬪, 비판투쟁)의 현장. 무죄추정의 원칙, 피의자 인권보호 등 인간의 기본권을 모두 무시한 인민재판의 폭력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투쟁 대상의 목에 걸린 팻말에 각각 “삼반분자,” “완고한 교화불능의 주자파,” “대반도”라 적혀 있다./공공부문>

민주집중제 내세워 삼권분립 부정

중국의 헌법은 삼권분립을 부정한다. 대신 입법부와 행정부를 하나로 묶는 “의행(議行)합일”을 강조한다. 형식상 행정부와 사법부는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종속된다. 행정, 입법, 사법의 권력이 통일된 “단일체(單一體) 국가”의 이상이지만······.

전국인민대표회의는 명목상의 국가 최고의 권력기구일 뿐이다. 국가권력의 핵심은 바로 중공 중앙상무위원회다. 전국인민대표는 중공중앙 상무위의 거수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중국헌법에 명시된 “인민민주독재”와 “민주집중제”의 당연한 귀결이다.

특히 문혁 시기, 중국의 인민은 인치(人治)의 늪에 빠져 허우적댔다. 1967년 이래 전국 지방정부는 “혁명위원회”에 장악됐다. “일원화 영도(領導)”를 표방한 혁명위원회는 지방정부의 당, 정, 군을 장악했다. 그 결과 인민법원과 인민 검찰원(檢察院) 등 각 지방의 사법기구는 군조직의 감시 하에 놓였다. 혁명위원회에 관해선 차후 상술하고, 문혁 시절 사법살인의 케이스를 살펴보자.

문화혁명의 시대, 사법 살인의 사례

1970년 3월 5일, 목요일. 베이징 노동자 경기장에는 10만 명의 군중이 꽉 들어차 있었다. “타도하라!” 혁명의 구호를 복창하는 성난 군중들 앞에 19명의 정치범들이 끌려 나왔다. 단상에 세워진 19명의 머리 위에 “사형, 즉시 집행”이란 판결이 선포됐다. 그들은 모두 어디론가 끌려갔고, 판결에 따라 곧 총살당했다. 가족들도 그들의 최후를 전혀 알지 못했다.

19명의 사형수들 사이엔 스물여덟 살의 위뤄커(遇羅克, 1942-1970)도 끼어 있었다. 그는 베이징 인민 기기(機器)공장의 견습공이었지만, 정치평론으로 문명을 날린 당대의 지식인이었다.

1966년 2월 13일, ‘문회보(文滙報)’에 사인방 야오원위안의 비평을 반박하는 그의 평론이 실렸는데, 큰 방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그의 진정한 출세작은 혁명세력의 신분세습을 비판한 “출신론(出身論)”이었다. 1967년 1월, 동인지 “중학문혁보(中學文革報)”에 여섯 차례에 걸쳐 게재된 “출신론”은 대중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67년 1월 18일자 “중학문혁보” 창간호에 실린 위뤄커의 “출신론”. 베이징 기계공장의 견습공 위뤄커는 이 글에서 “혈통론”을 봉건시대의 낡은 사상이라 비판했다. 그는 “인간의 사상은 실천을 통해서 형성된다”는 주장으로 출신성분에 따른 신분차별의 부당함을 고발한 이 글은 전국적 반향을 불러왔다. 결국 1968년 1월 5일 체포되었고, 1970년 3월 5일 19명의 정치범과 함께 베이징 노동자 운동장에서 개최된 10만인 대회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즉시 총살되었다.>

혈통론 비판한 워러커, 형장의 이슬로

지난 회 살펴봤듯, 문혁 초기 출신성분이 좋은 홍위병들은 “부모가 영웅이면 자식은 호걸”이라는 구호로 신분세습을 합리화하고 있었다. 당내 당권파의 축출을 목표로 했던 중앙문혁 소조는 “혈통론”을 반동이라 비판했다. 1966년 12월 말 “혈통론”을 제창했던 탄리푸(譚力夫, 1942- )는 투옥됐다. 그런 분위기를 타고 위뤄커의 “출신론”은 출판 직후 널리 유포됐는데, 그의 정연한 논리가 되레 중앙문혁소조의 신경을 건드렸다.

“출신론”에서 위뤄커는 우선 당시의 “혈통론”이 신분제적 발상이며, 그 이론적 기반은 자산계급의 형이상학이라 지적했다. 나아가 그는 “혈통론”이 “사회주의 제도 아래 다시금 새로운 특권계급을 만드는 반동의 카스트제도”라 질타했다. 신분제적 차별이 초래할 중장기적 사회적 문제를 분석한 후, 그는 “표현의 중요성”(重在政治表現)을 강조했다. 출신성분 보다는 개개인의 구체적 언행, 표현, 실천이 더욱 중요하다는 주장인데, 그 근거는 바로 마오쩌둥의 발언이었다.


<1967년 위뤄커 최후의 사진/ <<遇羅克: 遺作與回憶>>에서 발췌>

위뤄커는 철저하게 마오쩌둥 사상의 내에서 논리를 전개했다. 1957년 마오쩌둥은 말한 바 있다. “우리들의 대학생들이여, 비록 많은 사람들이 비(非)노동자 집안 출신의 자녀라 할지라도 소수를 제외한 모두가 애국자며, 모두가 사회주의를 지지한다!” 마오쩌둥의 발언에서 혁명의 공리(公理)를 도출하고, 그 공리에 따라 “혈통론”의 불합리를 논증하는 영리한 레토릭(rhetoric)이었다. 누구든 위뤄커를 공격하는 순간, 마오쩌둥을 부인하고 있음을 알아챌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위뤄커는 바로 그 “출신론” 때문에 필화에 휘말려 형장의 이슬로 스러졌다.

역시나 문제는 위뤄커의 출신성분이었다. 그의 부친은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전력 기술자였다. 전문분야에서 기술혁신으로 업적을 쌓았음에도 그는 1957년 “반우파투쟁” 당시 우파로 몰려 노동교양형에 처해졌다. 모친 역시 우파로 몰려 갖은 수모를 겪고 극빈의 생활고를 견뎌야 했다. 학업성적이 우수했던 위뤄커였지만, 우파의 낙인 때문에 세 번이나 대학입학을 할 수 없었다. 위뤄커의 “미천한” 출신성분이 문제였을까? 일개 정치천민, 흑오류(黑五類, 검은 다섯 부류)의 아들이 너무나도 당당하게 혁명세력의 권력세습을 비판한 게 문제였을까?

대독초(大毒草)로 낙인, 법의 이름으로 처형

1967년 4월 14일 중앙문혁소조의 어용(御用) 논객 치번위(戚本禹, 1931-2016)는 위뤄커의 “출신론”을 대독초(大毒草)라 선언했다. 문혁 시기 “대독초”의 낙인은 곧 사형선고였다. 곧 바로 위뤄커에 미행이 붙고 신변 위협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1968년 1월 5일, 위뤄커는 체포됐다. "반혁명 여론 조성, 반동사상의 유포, 암살활동 추진 음모, 반혁명조직 결성 등의 죄명이 들씌워졌다. 2년 후 그는 10만 명 앞에서 사형을 언도 받고 즉시 처형됐다. 마지막 순간 그의 몸은 문혁의 제단에 희생물로 바쳐진 셈이었다.

1978년 겨울, 위뤄커의 모친은 끈질기게 아들의 명예회복을 요청했다. 1979년 11월 21일, 베이징시 인민법원은 위뤄커의 무죄를 선고하고, 그의 부모에 약간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대체 한 편의 평론이 무엇이기에 중공정부는 법의 이름으로 그를 죽여야만 했을까? 일개 견습공의 정연한 논리가 두려웠던 것일까? 지금도 중국 안팎의 비판적 지식인들은 그를 “중국인권의 선구”라 칭송하고 있다. 독재정권은 제멋대로 법을 비틀어 위뤄커를 죽였지만, 좌익독재 특권세력의 자기모순을 꼬집은 그의 “출신론”은 “정신적 노예의 해방선언”이라 일컬어진다.


<“위대한 영수 마오주석께서 홍위병을 검열하시다!”/ 공공부문>

※ 필자 송재윤(51)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는 최근 ‘슬픈 중국: 인민민주독재 1948-1964’(까치)를 출간했다. 중국 최현대사를 다룬 3부작 “슬픈 중국” 시리즈의 제 1권이다. 이번에 연재하는 ‘문화혁명 이야기’는 2권에 해당한다. 송 교수는 학술 서적 외에 국적과 개인의 정체성을 다룬 영문소설 “Yoshiko’s Flags” (Quattro Books, 2018)의 저자이기도 하다.

<26회> 누가 알았을까 귀족이 될 줄… 권력 잡고 특권층 된 정의의 사도들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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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창조의 도시, 역사의 도시 보스턴

보스턴 마라톤 결승선이 도로에 선명하게 칠해져 있다. 이동학 작가


테러 조직과 관계없이, 두 형제가 종교를 이유로 테러를 저지른 것으로 밝혀진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은 2001년 9ㆍ11테러 이후 미국 사회를 크게 흔든 사건으로 남았다.

당시 결승점 부근에서 터진 두 번의 폭발로 8살 어린이를 포함해 3명이 사망하고 180여명이 부상할 정도로 사람들에게 강한 기억을 남겼기 때문이다. 일명 밥통 폭발장치는 쇠구슬 등을 넣어 크레모어와 같이 폭발 순간 쇠 구슬이 튀어 나가며 사방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도록 만들어졌다. 폭발 직후 추격 과정에서 형이 죽고 붙잡힌 동생은 배심원들에 의해 사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올해 7월 항소법원에서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다시 재판하라는 결정이 내려져 종신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테러로 인한 상흔이 감도는 보스턴에 도착한 것은 2018년 11월. 차가운 공기를 햇볕이 이기지 못할 정도의 쌀쌀함으로 가득 채워가기 시작한 초겨울이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테러 현장이었다. 두꺼운 옷을 입은 채 거리를 다니는 시민들 틈으로 마라톤 도착 지점을 알려주는 선이 보였다. 도심 속에 보스턴 마라톤의 결승선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을 정도로 이 대회는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매년 4월 셋째 주 월요일인 애국자의 날로 날짜가 정해져 있다.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첫 근대 올림픽을 기념하고자 이듬해인 1897년 시작되었으니 그 유서도 깊다.파워사다리


보스턴의 교통 체증은 미국 내에서도 심각한 편. 하지만 시내를 걷는 시민들의 얼굴이 편안해 보인다. 이동학 작가


세계적으로 런던 마라톤(영국), 로테르담 마라톤(네덜란드), 뉴욕 마라톤(미국)과 함께 보스턴 마라톤(미국)은 세계 4대 메이저 마라톤 대회에 어깨를 견주고 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2020년 대회가 미뤄졌다가, 결국 취소되며 참가비(미국인 205달러ㆍ외국인 255달러)를 환불해줬지만, 1996년 100회째에 치러진 대회에 무려 3만8,700명이 참가, 세계 최대 규모 국제 마라톤 대회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이봉주 선수가 2001년도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물론 앞서 1947년 한국인 최초 참가자인 서윤복 선수가 대회 신기록을 세우며 1위를 한 적이 있고, 이후 1950년 54회 대회에는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 선수가 1, 2, 3위로 골인해 화제가 됐다.

보스턴의 다양성을 이끄는 젊음의 힘

보스턴을 가로지르는 찰스강. 찰스강 근처에 MIT(메사추세츠 공대)가 있다. 이동학 작가


보스턴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하버드대와 MIT(메사추세츠 공대)가 있다. 하버드대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립대이다. 설립 시기가 1636년이다. 보스턴 내 이러한 명문 사학과 더불어 많은 대학들의 존재는 미국 내 인재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젊은이들로부터 유학 가고 싶은 곳으로 꼽히는 등 인재양성의 요람으로 여겨진다.

젊은이들은 고스란히 도시의 성장과 혁신의 원동력이 되는 동시에 생동감 넘치는 도시의 샘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하버드대 교정을 거니는 동안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곳이 있었는데 하버드대 설립을 위해 많은 재산을 기부한 존하버드의 동상 앞이었다.

그의 발을 만지면 하버드대에 들어갈 수 있다는 속설 때문에 학교를 방문한 많은 이들이 동상 발에 손을 올리고 사진을 찍는다. 그런 이유로 유독 발만 닳아 색이 바랬다.


미국 사회를 이루는 다양한 사람들. 보스턴은 절반 가량이 백인, 나머지가 흑인, 아시안, 히스패닉 등으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이동학 작가


이와 같은 교육 환경은 매년 미국 내 여러 지역, 오대양 육대주의 다양한 나라에서 끊임없이 젊은이들이 교육도시 보스턴으로 찾아 오도록 만든다. 그로 인해 보스턴은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 도시라 불린다.

다양한 문화가 섞이고, 다양한 지역이 섞이는 힘은 그대로 도시 혁신의 기폭제로 연결된다. 이를 웅변하듯 보스턴을 본거지로 하는 세계적 기업들이 즐비하다. 보스턴 컨설팅그룹, 배인앤드 컴퍼니, 던킨도너츠, 제너럴일렉트릭, 질레트, 컨버스, 트립어드바이저, 뉴발란스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기업들의 본사가 있거나 설립의 기초가 된 곳이다.


보스톤이라는 알파벳이 새겨진 구조물 앞에서 사진찍는 시민들. 이동학 작가


보스턴에는 약 70만 명이 살고 있지만 인근 지역을 포함해 460만 여명이 사는 미국의 북동부를 대표하는 도시의 역할을 유지하고 있다. 오늘 날 찬란한 인류 문명을 대변하듯 세계 최고의 교육 도시이자 혁신을 모토로 도시 문제를 해결하려는 야심을 가진 도시 보스턴. 이 보스턴에서 오늘날의 미국이 탄생 됐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보스턴에 도착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강력한 추위를 자랑하는 보스턴의 겨울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노숙인. 이동학 작가


바닥에 박힌 빨간 벽돌 속엔 역사가 고스란히


차가워 보이는 도시 숲 사이로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빨간 벽돌. 인도는 물론 도로를 가로 지르고 있는 횡단보도로도 빨간 벽돌이 이어진다. 빨간 벽돌을 따라 돌다 보면 몇 분마다 하나씩 의미 심장해 보이는 건물들을 만나게 되는데, 알고 보니 프리덤트레일(freedomtrail)이라 불리워지는 도시 산책로였다.

도시 산책로는 시작부터 끝까지 미국의 초기 역사와 독립 혁명사를 만날 수 있도록 연결돼 있다. 때문에 영국의 식민지를 벗어나기 위해 벌였던 최초의 독립 전쟁의 현장이 바로 이곳 보스턴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약 4㎞에 걸쳐 16개의 역사적 장소로 안내 되어지는 빨간 벽돌 길을 함께 걸어보자.


프리덤 트레일. 1951년 빌 스코필드(Bill Schofield)와 밥 윈(Bob Winn)이 생각해 낸 유적지 관광 아이디어. 이동학 작가


미국에서 가장 오래 된 공원으로 알려진 커먼공원(Boston Common)은 1634년 조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에서 넘어온 청교도 개척자들이 십시일반 돈을 보태 구입한 공동 토지로 시작되었다는데, 요즘말로 따지면 공유 공간이다.

1830년까지는 지역 주민들이 가축을 방목할 때 주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동물 마리 수를 따져 관리비를 냈다고 전해진다. 때론 잘못을 저지른 청교도들의 처벌 장소로 쓰이기도 했고, 살인 등 죄수를 처형한 뒤 매달아 놓는 장소로도 사용됐다. 1775년 4월 19일은 영국군이 처음 보스턴으로 쳐들어 와 전투를 하는데, 이때 레드코츠(Redcoats)라 불리웠던 영국군이 진을 친 장소로도 이용됐다.

보스턴 마라톤이 바로 이 지점에서 연결되는데, 당시 쳐들어 온 영국군에 맞서 독립을 쟁취해 낸 상징의 날로 4월19일을 '애국자의 날'로 기리고 훗날 4월 셋째 주 월요일로 지정되게 된 연유이다.


매년 보스턴을 찾는 외지인은 2,000만 명이 넘고, 프리덤 트레일의 연간 방문자는 400만에 달한다고 한다. 이동학 작가


1778년 프랑스 함대 방문 시 커먼공원에 있던 소들의 우유를 짜 대접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가까운 역사 속에서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베트남 전쟁 반대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역사가 서려 있는 커먼 공원은 이제 겨울에는 학생들의 스케이트장으로, 시민들의 피크닉, 커플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 도시 산책로는 커먼 공원을 시작 지점으로 하며, 다음 코스는 황금색 돔 지붕을 자랑하는 매사추세츠 주 의회 의사당이다.

1798년 개관한 이 건물은 정부 청사 역할을 해왔으며, 현재는 상원과 하원 의원들이 있는 의회의 역할을 하고 있다. 커먼 공원 근처에 있는 파크 스트리트 교회는 1809년 지어졌고, 빨간 벽돌과 하얀색 첨탑이 매우 인상적이다. 건물의 높이가 66m나 되기 때문에 당시 시대상으로 보면 도시의 랜드 마크 역할을 톡톡히 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200년이 넘은 관록을 그대로 뽐내고 있는 중이다.


커먼 공원에서 관광객들이 파크스트리트 교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이동학 작가


2~3분을 걸었을까 유독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 가까이 가봤더니 산책로의 세 번째 포인트인 그래너리(Granary) 묘지였다. 도심 한가운데 묘지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지만 묘지가 조성 된 때가 1660년이라니, 도시 안에 묘지가 생긴게 아니고 묘지 옆에 도시가 들어섰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이 곳에 돌비석은 2,300여 개가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묻혀 있는 사망자는 5,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보건·위생·식량 등의 문제로 일찍 사망한 영유아부터 독립선언서의 세 번째 서명자로 알려진 로버트 트릿 페인(Robert Treat Paine), 존 핸콕(John Hancock), 사무엘 애덤스(Samuel Adams) 등 독립 영웅들의 묘지가 함께 조성되어 있다. 한 해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역사 도시의 명성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덤 트레일을 따라 황금색 돔의 의사당이 보인다. 이동학 작가


또 몇 분을 걸어가면 1686년 보스턴 내 뉴잉글랜드 지역 최초의 성공회 교회인 킹스 채플이 자리하고 있다. 330년 넘는 역사를 가졌고, 기존의 목조 건물에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바깥을 석조 구조물로 지어 지금 모습을 완성시킨 때가 1754년이니, 266년이 넘은 예배당이다.

또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립학교로 꼽히는 보스턴 라틴스쿨(Boston Latin School)은 1635년 4월 23일에 설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미국 건국의 아버지 대열에 들어선 벤자민 프랭클린이 이 학교를 다니다 집안 사정으로 자퇴했다. 이 곳엔 현재 그를 기리는 동상이 서 있다.


그래너리 묘지 앞의 현판을 읽고 있는 시민들. 이동학 작가


이 외에도 올드코너서점, 올드사우스미팅하우스,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올드스테이트하우스, 보스턴 대학살, 새뮤얼 애덤스 등이 독립의 필요성을 주장했던 패뉴일 홀, 폴리비어 하우스, 올드노스 교회, 콥스 힐 묘지, 전함, 벙커힐 기념비 등 200년~400년의 역사를 오가며 조성된 장소들이 최첨단 도시 보스턴의 곳곳에서 보물 역할을 하고 있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실은 이렇게까지 오는 과정은 순탄치는 않았던 것 같다. 예컨대 현재까지도 활약하고 있는 올드코너 서점의 경우 1960년대 차량이 늘어나자 주차장 조성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철거 대상이 됐다. 개발업자들은 그 틈에서 옛것을 부수고 새로운 수입 창출의 수단으로 여겼다.

하지만 전통적 도시 건축물과 중요한 문화 유산들이 사라지는 것을 걱정한 사람들은 비영리기구(NGO) HBI(Historic Boston Incorporated)를 만들어 대응했고 이를 지켜냈다. 아마도 당시에 건물을 부수고 주차장을 만들었다면 개발업자들에게 수익이 돌아갔을테지만, 건축물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오늘날 보스턴 전체가 얻는 수익은 값을 따질 수 없을 것이다.

자유로움이 토론되는 도시

교회 앞에 걸려있는 무지개 깃발. 진보적인 도시의 선명성을 보여준다.


보스턴은 앞서 살펴본대로 생각해본다면 전통을 보존하고 지키려는 도시지만, 반면 사람들의 의식과 마음은 진취적으로 작동하는 도시다.

동성 결혼을 합법화 한 최초의 주가 보스턴을 수도로 하는 매사추세츠 주인데, 팬웨이연구소(Fenway Institute)에 따르면 매사추세츠 인구의 5% 가량이 성소수자를 가리키는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이고, 이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수치라고 한다.

때문에 보수적 전통을 고수하는 교회들조차 이들을 차별하거나 선입견으로 몰아 내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품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다 보니 보스턴은 진보주의 성향이 강하고 정치적으로도 민주당 강세 지역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보스턴 공립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시민들의 모습. 조명 빛이 아름답다. 이동학 작가


교육, 문화, 역사, 경제, 스포츠 등 여러 방면에서 다채로운 활약은 보스턴을 더욱 생기 있는 도시로 만들어 준다. 프리덤 트레일을 걷던 도중 냄비 소리가 울리기에 쳐다본 곳에선 예술 음악가들의 난타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고, 전 세계를 돌며 무수히 많이 들었던 거리 공연의 음악 중 단연 탑이었다. 여전히 그 멜로디가 기억 속에 남을 정도로 신났고, 박진감이 넘쳤는데 이 음악 때문에 보스턴의 인상도 강렬하게 살아있다.


보스턴 시내의 거리 공연. 흥미로운 볼거리가 참 많은 도시었다. 이동학 작가


3분 만에 포장 끝, 미래 가치 품은 로봇볶음밥

7개의 철판에서 볶음밥이 만들어 지고 있다. 주문 순간부터 딱 3분이면 음식이 나온다. 이동학 작가


강렬한 기억을 만들어 준 것은 또 있다. 전자동 철판 볶음밥. 이름 하여 로봇 볶음밥이다. 킹스채플과 올드스테이트하우스의 중간에 있는 '스파이스(SPYCE)' 가게에 들어서자 한 쪽으로는 테이블이 놓여 있고, 다른 한 쪽에 온라인 주문대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철판 볶음밥은 4가지 종류가 있는데, 라틴식, 로마식, 레바논식 그리고 한국식이 있었다. 김치를 곁들인 볶음밥이지만 어쩐지 내 입맛엔 익숙하진 않았다. 내가 놀란 건 한국식 볶음밥이 있어서가 아니라, 몇 번의 터치로 주문을 끝낸 뒤 요리가 되는 광경을 그대로 지켜보면서였다.

휘황찬란한 느낌으로 철밥 통에 식재료들이 자동으로 들어가고 열이 가해지며 치이익~ 소리를 내며 철판이 돌아간다. 마지막 터치로 주문을 끝내고 나서부터 음식이 그릇에 담겨 나오는 시간은 불과 3분이 좀 넘었다. 두 명의 직원들은 최종 포장만 신경쓸 뿐 요리의 시작과 끝은 철판 로봇이 알아서 다 한다.


스파이시의 로봇 볶음밥이 조리 된 후 추가 재료를 얹는 것은 사람이 한다. 이동학 작가


스파이스를 창업한 이들은 MIT에서 로봇 공학을 전공한 4명의 엔지니어들이다. 이들은 매일 점심과 저녁에 영양가도 별로인 음식에 10달러를 써야 하는 것에 많은 불만을 가졌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역시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감안해 원가를 줄이고, 더 맛있는 음식을 제공할 수 있게 로봇 요리 시스템 개발에 나선다. 영양가 있는 식사를 요리하고, 제공하고, 스스로 세척까지 하는 스마트 지능형 철판볶음밥 로봇을 만든 것이다. 덕분에 식사 가격은 7.5달러로 낮아졌다.

무엇보다 이들에게 반한 건 이들이 가진 철학 때문이다. 이 식당의 메뉴엔 쇠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쇠고기 생산이 지속 가능하지 않고, 지구에 부담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메뉴에서 쇠고기를 취급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식당들 역시 그런 선택을 하는데 미약하나마 영향을 미치고 싶다고 한다. 이들은 앞으로 로봇요리, 냉장고 등 식당에서 쓰이는 모든 전력,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조달할 것이라고 한다.


보스턴에서 만난 식당 '스파이시'에서는 로봇이 요리하는 네 가지 종류의 볶음밥을 맛볼 수 있다. 지속적으로 메뉴를 늘려간다고 했으니, 현재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동학 작가


과거를 단단히 세우고 미래로 달려가는 중

보스턴에서 바라본 대서양.


찰스 강이 흐르는 강가를 거닐고, 북대서양이 맞닿은 해안가에서 날아가는 새들을 보며, 우리 인류가 어느 구간을 지나고 있는 지 생각해 봤다. 미래를 앞당기고 있는 보스턴은 청교도들이 건너와 개척한 이래로 독립 전쟁의 시발점이었고, 미국 경제 발전의 동력으로 기능했다.

세계 최고의 바이오테크 산업을 이끌고 있으며, 수많은 스타트업들도 태동하고 있다. 역사 속에서 미국을 개척한 선조들의 힘을 바탕으로 현 세대들은 미래를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낡아빠진 50년 된 지하철이 듣기 싫은 굉음을 내며 화려한 도시의 이면을 달리고 있지만 그조차 보스턴을 이루는 일부다. 어쩌면 우리에게 매순간 던져진 질문인지도 모른다. 어떤 과거를 붙잡아두고, 어떤 미래를 당겨올 것인가.


먼지로 뒤덮인 보스턴의 지하철. 페인트도 떨어져 나가 낡은 모습을 한눈에 확인 가능하다. 이동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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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충동에 시달린다며 잠적했던 박진성 시인 다시 개인 SNS에 글 남겨

박진성 시인
성폭력 의혹에 시달리다 삶에 미련이 없다는 글을 남기고 잠적해 큰 파문을 일으켰던 박진성 시인이 17일 살아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박 시인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살아 있다는 것이 징그럽고 지겨웠다고 그동안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그는 “살아 있다는 것, 살아서 물 마시고 숨쉬고 다시 허기를 느끼고 밥 챙겨 먹고 무언가를 욕망하는 것, 나도 모르는 사이 발톱이 자라고 손톱과 머릿카락이 자라고 말을 한다는 자체가 징그럽고 지겨웠다”고 적었다.

이어 서울 반포와 강 건너 용산 언저리를 떠돌았다며, 다리에도 올라가 보고 종로 어디 건물에도 올라가 보았다고 털어놓았다. 목숨을 끊을 생각을 실행에 옮기려 했다는 것이다.

박 시인은 ‘숨이 목까지 차 올랐을 때 누군가는 또 흉물을 치워야 하겠구나, 그게 평생의 상처로 남겠구나’란 생각에 자살 충동을 되돌리고 한경변을 오래 걸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대부분의 (성폭력) 의혹이 사실무근으로 밝혀진 손석희 전 앵커는 지금쯤 어떤 기분일까”라며 “단지 의혹만으로 자신이, 삶 자체를 망가뜨린 사람들에겐 어떤 마음일까, 자신이 주동해서 쫓아 내놓고 너는 왜 쫓겨났냐고 다시 조롱 받는 어떤 삶들을 볼 때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라고 의문을 던졌다.

JTBC는 박 시인의 성폭력 의혹을 제기한 여성을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인터뷰했고, 박 시인은 JTBC의 허위보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이겨 배상금 400만원을 받으라는 판결을 받았다.

박 시인은 문단에서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활발할 때 가짜 성폭력 피해자로부터 가해자로 몰려 시집이 출간정지되는 등 큰 피해를 겪었다.

박 시인은 ‘손석희 앵커님께’란 시를 통해 ‘의혹만으로 여럿 인생 파탄 내놓고 그간 안녕하셨습니까’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2016년 10월 한 여성이 박 시인을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했으나 2017년 9월 대전지검으로부터 박 시인은 강간과 강제추행 혐의에 대해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그는 “뉴스에는 ‘아니면 말고’가 있지만 ‘아니면 말고의 삶’은 어디에도 없을 텐데 그걸 잘 알 텐데. 그 질문 하나를 강물에 던지면서 오래 걸었다”라며 손 전 앵커에 대한 감정의 앙금을 토로했다.

박 시인은 “수식어가 많은 문장이 시를 망치듯이 변명과 설명이 많은 반성은 상대방의 어떤 시간과 마음을 상하게 하겠지요”라며 “부끄럽습니다. 조용에 조용을 더해서 겸손하게 살겠습니다”라고 자신을 걱정해준 많은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파워볼실시간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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