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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아라 작성일20-11-20 15:56 조회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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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중앙타파눌리군에 사는 조슈아 후타가룽(33)의 집에 떨어진 1.8㎏ 무게의 운석.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중앙타파눌리군에 사는 조슈아 후타가룽(33)의 집에 떨어진 1.8㎏ 무게의 운석.
살던 집 지붕을 뚫고 마당에 떨어진 운석의 가치가 우리 돈으로 20억원 가치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운석 로또’를 맞은 것으로 보도됐던 인도네시아 남성이 실제로는 1600만원에 팔았다며 실망감을 나타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해당 운석을 사간 운석 전문가는 ‘헐값 매각’ 논란에 휩싸였다.

20일 BBC인도네시아와 일간 콤파스 등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중앙타파눌리군에 사는 조슈아 후타가룽(33)은 최근 영국 매체들이 자신이 전문가에게 판매한 운석의 가치가 260억 루피아(약 20억원)에 이른다고 보도하자 깜짝 놀랐다.동행복권파워볼

후타가룽은 “운석이 처음에는 2.2㎏ 정도였으나 만지면서 부서져 1.8㎏을 발리에 사는 미국인 재러드 콜린스에게 2억 루피아(1600만원)에 팔았다”며 “만약 값어치가 진짜 260억 루피아 정도라면 내가 속은 것 같다. 정말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8월 1일 오후 4시쯤 운석이 후타가룽이 사는 집의 양철 지붕을 뚫고 베란다 일부를 박살낸 뒤 집 앞마당 15㎝ 깊이의 땅 속에 박혔다.

관 짜는 일을 하고 있던 후타가룽은 “맑은 날이었는데 하늘에서 뭔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집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흔들렸다”며 “운석을 파내보니 여전히 따뜻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중앙타파눌리군에 사는 조슈아 후타가룽(33)의 집 지붕을 뚫고 떨어진 1.8㎏ 무게의 운석.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중앙타파눌리군에 사는 조슈아 후타가룽(33)의 집 지붕을 뚫고 떨어진 1.8㎏ 무게의 운석.
후타가룽의 집에 떨어진 운석은 조사 결과 45억 년 전 생성됐고, 태양계에서 가장 처음 만들어진 물질을 포함하는 ‘카보네이셔스 콘드라이트’(carbonaceous Chondrite)로 확인됐다.

후타가룽은 운석 사진과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렸고, 현지 매체들은 물론 운석을 보려는 사람들로 그의 집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운석을 사겠다는 이들도 앞다퉈 줄을 섰다.

후타가룽은 8월 17일 집으로 찾아온 운석 전문가 콜린스에게 운석을 팔았다.

그는 이후 언론 매체에 운석 가격에 대해 “후타가룽에게 30년치 월급을 지불했다”고 말했다.

이후 콜린스가 미국으로 보낸 운석은 인디애나폴리스의 운석 수집가 제이 피어텍의 손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더선, 데일리스타 등 영국 매체들은 이달 17일 후타가룽의 운석 기사를 보도하면서, 카보네이셔스 콘드라이트가 온라인사이트에서 1g당 1410만 루피아(112만원)에 거래되기에 1.8㎏이면 약 260억 루피아(20억원)의 가치를 가진다고 보도했다.

조슈아 후타가룽(왼쪽)의 집에 떨어진 운석을 구입해 미국 운석 수집가에게 넘긴 재러드 콜린스(오른쪽).

조슈아 후타가룽(왼쪽)의 집에 떨어진 운석을 구입해 미국 운석 수집가에게 넘긴 재러드 콜린스(오른쪽).
그러나 보도와 달리 후타가룽은 운석을 2억 루피아(1600만원)에 넘겼던 것이었다.

후타가룽은 해당 소식을 접한 뒤 실망감을 나타내며 “운석 판 돈을 가족과 보육원에 나눠주고, 예배당 만드는 일과 부모님 묘 손보는 일에 사용해 이미 모두 썼다”고 주장했다.

후타가룽은 운석 중 1.8㎏만 콜린스에게 팔고, 남은 부스러기 조각들은 친척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5g을 기념으로 가졌다고 말했다.

운석을 100배 이상 싸게 샀다는 비난이 빗발치자 콜린스는 BBC인도네시아에 해명서를 보냈다.

콜린스는 “조슈아에게 지불한 돈은 2억 루피아가 아니며 260억 루피아 가치의 운석은 없다”며 “거래 가치는 조슈아와 미국의 구매자가 직접 소통해서 정했고, 나는 조슈아의 집까지 여행하고 시간을 쓴 데 대한 보상만 받았다”고 주장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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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공단이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낸 530억원대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 출석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날 1심은 패소했다. 2020.11.20.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 김동현 기자 =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담배 회사들을 상대로 흡연 피해로 수백억원의 진료비를 더 지출한 것에 대해 배상을 하라고 소송했지만, 법원이 패소 판정을 내린 것에 대해 담배업계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KT&G는 "KT&G는 재판부의 신중하고 사려 깊은 판단을 존중한다"며 "이번 판결은 원고가 개별수진자에게 치료비를 지급했다고 해도 제조자를 상대로 한 보험금지급액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이 성립할 수 없음을 분명히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역학적 상관관계만으로는 개별 흡연 수진자들의 폐암 및 후두암 발병과 흡연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은 국가기관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국내 최초 소송에서 KT&G의 위법행위가 없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국필립모리스는 "이번 판결에서 지방법원은 담배 소송건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과거 판결을 따랐으며 비슷한 주장을 기각해 온 전세계 법원의 기조를 따랐다"며 "흡연은 개인의 선택이며 대중들은 흡연에 따른 위험성을 오랫동안 인지하고 있었다고 법원들은 일관된 결론을 내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흡연으로 인한 피해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익한 소송이 아니라 더 나은 선택인 비연소제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국내 성인흡연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라고 믿는다"며 "담배를 피우는 수백만 명의 국내 성인 흡연자들을 위해 가능한 한 빨리 일반담배 제품을 비연소제품으로 대체하는 것에 노력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BAT코리아는 "오늘 법원의 판결에 대해 존중하고 환경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이행하는 것에 집중하겠다"고 입장을 내놨다.

한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담배 회사들을 상대로 흡연 피해로 수백억원의 진료비를 더 지출한 것에 대해 배상을 하라고 소송했지만 법원은 패소 판정을 내렸다. 소송을 제기한 지 6년 만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부장판사 홍기찬)는 20일 건보공단이 KT&G와 한국필립모리스, 브리티쉬아메리칸토바코(BAT)코리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건보공단은 2014년 4월 담배회사들이 수입·제조·판매한 담배로 인해 발생한 3456명의 흡연자가 폐암 및 후두암 등이 발병했고 보험금여 명목으로 533억원이 더 지출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건보공단의 보험급여 지출은 담배회사들의 위법행위보다 '국민건강보험 가입에 따른 보험관계'에 따라 지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담배회사 행위와 보험급여 지출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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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경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조선의 의인, 조지 포크] 초기 개혁가들에게 개화 정신을 일깨워 준 이동인

개항초기 조선의 근대화와 자주독립을 위해 젊음을 바쳤으나, 청나라로부터는 모략당했고, 조선으로부터는 추방당했으며, 본국 정부로부터는 해임당했다. 어느 날 일본의 호젓한 산길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의인 조지 포크에 대한 이야기이다. <기자말>

[김선흥 기자]

* 이 기사는 구한말 조선에 머문 미 해군 중위 조지 클레이턴 포크의 이야기를 사료와 학술 논문 등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이전 기사 : 영국 외교관의 1878년 부산 방문기 최초 공개]

안녕하세요. 조지 포크예요.

우리는 지금 의문의 승려 이동인이 1880년 일본 주재 영국 외교관 사토우를 찾아가게 된 동기와 경위를 탐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번에 우리는 사토우의 부산 행적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사토우가 가지고 갔던 편지 사본을 누구에게 전달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부산 주재 일본 관리관(외교관으로서 나중에 직명이 '영사'로 개칭됨)과 조선인 변찰관(부산의 대외업무 책임자)의 손에 들어갔습니다.파워볼게임

이동인 스님은 이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통해 편지를 보았을 것입니다. 편지와 함께 사토우의 명함도 같이 보았겠지요. 이제 이 두 사람 중에 누구를 접촉하였는지를 알아내면 수수께끼가 풀릴 겁니다.

이동인이 만난 사람을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


▲ 이동인은 왜 영국 외교관을 그토록 만나려 했던 것일까요?
ⓒ 최은경


잠깐, 왜 이런 걸 탐구해야 하는지 그 뜻을 생각해 봅시다. 이동인이 목숨을 걸고 영국 외교관을 만나려 한 것이 사실이라면 무척 묘미가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선인이 주도적으로 서양인을 찾아나선 초유의 일이니까요.

당시 조선인들은 서양인을 배척허거나 증오하거나 두려워했습니다. 만일 서양인을 접촉하다 발각되면 무슨 변고가 닥칠지 모르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천민에 속했던 일개 승려가 영국 외교관을 만나려 했다면 거기엔 깊은 곡절이 있었을 건 두말할 나위가 없겠죠.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조선의 초기 급진 개화파들과 가깝게 지냈습니다. 그 중 서재필은 훗날 이동인에 대하여 이렇게 회고합니다.

"일본의 외교사절이 조선에 오기 전 몇 해 동안 몇 사람의 조선 지식분자들은 총명한 불교 승려와 통신을 하고 있었다. 그 승려는 일본에서 구미문명에 관한 많은 서적을 가져왔다. 초기 개화파들은 그 승려가 가져온 책들을 탐독함으로써 조선이란 울을 벗어난 바깥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차츰 알게 되었다."
- 출처 서재필의, <회고 갑신정변>(1934)

"하루는 김옥균이 동지 여러 사람을 데리고 서대문 밖 새 절 붕원사로 놀러가자고 하여 갔다. 그 절에 승려 한 사람이 있었는데 매우 공손하고 말도 잘 하고 또 공부도 많이 한 모양이었다. 그 승려가 처음에 사진을 보여주는데 세계 여러나라 도시와 군인의 모습 같은 것을 요지경이라는 글라스로 보여주어 매우 재미가 있었다.지.우리가 그가 전해 준 <만국사기>라는 책을 돌려보고 여러 나라 이름이며 내력을 대강 알 수 있었고 다들 재미있어 했다. 스님은 지금 일본인들이 서양사람들과 사귀어 가지고 여러 가지 제도를 문명을 일으킨다고 말했다.

그가 준 책을 다 읽고 나니까 세계 대세를 대강 짐작할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처럼 인민의 권리를 세워보자는 생각이 났다. 이것이 우리가 개화파로 맨 먼저 나서게 된 근본이었다. 다시 말하면 이동인이라는 승려가 우리를 인도해 주었고 우리는 그 책을 읽고 그 사상을 가지게 되었으니 봉원사가 개화파의 온상이라고 할 것이다. " - 출처 김도태 저 <서재필박사 자서전>(1972)

이처럼 초기 개혁가들에게 서양에 대한 지식을 전해주고 세계 정세에 대한 안목과 개화 정신을 일깨워 준 사람이 바로 이동인 스님이었습니다.

1884년 봄 내가 조선에 첫 발을 디뎠을 때에는 이미 이동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에게서 영향을 받은 개혁가들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죠.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나는 갑신정변이 일어날지를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본국 정부에 상세히 보고하였지요. 그 보고서가 지금 보존되어 있을 겁니다. 그건 나중에 이야기 하겠습니다. 지금은 이동인 스님의 행적을 알아내야 하니까요.

이동인 스님은 자신의 행적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두 건을 여기 소개할 참인데, 여기에서 수수께끼가 풀릴지 모릅니다.

이동인과 일본 당국의 동상이몽

먼저 <朝鮮開敎五十年誌조선개교 50년지>를 봅니다. 일본 불교의 조선 진출 역사 기록입니다. 이동인이 부산의 일본 절(교토 동본원사東本願寺의 별원別院)에 출입했던 정황이 여실히 나타나 있습니다.

"부산별원이 개설된 이듬해인 1878년 12월의 어느 날,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아침이었다. 승려 이동인이 간절히 오쿠무라(奧村) 법사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며 별원을 찾아왔다. 품격도 있고 문필도 뛰어나서 오쿠무라 법사가 만났던 승려들과는 대단히 분위기가 달랐으므로, 오쿠무라 법사도 그를 대단히 정중하게 대했다. 그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떠났다.

그 후 그는 오쿠무라 법사의 후의에 감사하며 여러 차례 내방했고, 어떨 때는 별원에 며칠간 머물면서 항상 시사(時事)와 국제 정세를 말할 뿐 굳이 불교를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쿠무라 법사는 더욱 그가 심상한 승려가 아님을 알고, 넌지시 그의 진면목을 간파하려고 했지만, 그는 쉽게 마음속을 털어놓지 않았다. 그렇게 반년이나 지났을 것이다. 1879년 초여름 경부터 경성에 간다고 하면서 일시 소식이 두절되었다. 8월 중순에 이르러 갑자기 경성에서 찾아와서는 사람을 멀리하더니, 이제까지는 충심(衷心)을 털어놓기를 꺼렸지만 이제 그 시기에 도달했다, 부디 나를 위해 도움을 주길 바란다고 전제하면서 일본의 정세를 시찰하고 문물을 연구해서 조선의 문화개혁(文化改革)에 공헌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내 뜻을 도와달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참된 진심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또 박영효·김옥균 두 사람에게서 그 여비로 받은 길이 2촌 남짓의 순금 막대 4자루를 보여주면서 여행준비를 상담했다." - 출처:大谷派本願寺朝鮮開敎監督部 編, 『朝鮮開敎五十年誌』(京城: 大谷派本願寺朝鮮開敎監督部, 1927), pp.137~138

이 자료를 통해 우리는 이동인이 의도적으로 일본 승려를 접촉하여 일본에 건너가려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에 언급된 1879년 1월의 시점은 바로 사토우가 부산을 방문했던 시기와 근접합니다. 바로 그 즈음 이동인이 오쿠무라와 매우 가깝에 지냈다는 사실을 주목해 봅시다. 오쿠무라와 일본 관리관이 같은 동네(일본인 거류지)에서 살면서 늘 접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오쿠무라를 조선에 진출시킨 것은 일본 당국이었습니다. 1877년 일본 정부당국으로부터 조선 포교 요청을 받은 교토의 동본원사에서 오쿠무라를 파견했던 것이지요.

그 해 9월 28일 부산에 도착한 오쿠무라는 옛 왜관(倭館)의 서관(西館)을 빌려 포교를 시작합니다. 앞으로 부산을 넘어 다른 개항장으로 교세를 확장하려는 오쿠무라와 원산과 인천도 개항시키려는 일본 외교당국의 이해가 일치했기 때문에 서로간에 긴밀한 공조가 이루어지고 있었지요.

그러한 상황에서 이동인은 그들에게 교묘하게 접근했습니다. 일본 측은 친일 세력을 조성하려 한 반면, 이동인은 일본을 따라잡고 앞질러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동상이몽이라고 할까요?

1878년 11월 말 경 사토우가 부산에서 일본 관리관과 긴밀히 접촉할 즈음에 오쿠무라는 그런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한편 오쿠무라의 절에서 며칠씩 묶기도 했던 이동인으로서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토우의 동정을 탐문할 수 있었을 겁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동인이 관리관을 만났다는 직접 증거가 존재합니다.

흥미롭게도 초대 조선 주재 일본 공사 하나부사(花房)가 1879년 봄 이동인과 2시간 남짓 대화한 내용이 도쿄 도립대학 도사관에서 발굴되었다 합니다. 이 자료는 이동인의 인물이나 사상을 이해하는데 더 없이 귀중한 사료라는군요. 여기에서는 서두만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부사는 4월 25일 이동인이 찾아와 처음 만났는데 그의 의복과 두발 모두가 고관 같기도 하고 또 선비 같기도 하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나아가 하나부사는 이동인의 동작과 언어가 "우리와 달랐다"고 고백합니다. 또한 이동인이 지난 번에 마에다(前田)를 만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었음을 적고 있습니다. 이동인이 하나부사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다는 것이지요.

이동인은 하나부사를 만나기 전부터 마에다라는 인물과 접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에다는 누구인가? 바로 우리가 찾고 있는 관리관입니다. 마에다 겐키치(前田獻吉)일본 외무성 5등급 외교관입니다. 마에다는 1879년 6월의 정식 부임을 앞두고 미리 업무를 익히기 위해 부산에 와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이로써 이동인이 관리관과 긴밀히 접촉하고 있었음이 확인됩니다. 또한 이동인은 마에다의 전임관리관(山之珹祐長)도 만났을 것입니다. 이 시기는 영국의 사토우가 부산을 방문한 즈음입니다. 그때에 이동인이 사토우의 편지를 지니고 있던 관리관을 만난 것입니다.

누가 이동인을 왜 죽였을까요?

이제 우리는 퍼즐을 확실히 푼 셈입니다. 이동인은 일본 승려 및 외교관을 통해 애써 사토우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고 그 정보로 동경의 사토우 집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 깜깜했던 시기에 이동인은 왜 영국 외교관을 그토록 만나려 했던 것일까요?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살펴볼 사토우의 일기가 의문을 풀어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동인에 대한 타자의 기록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초대면에 이동인에 감복한다는 점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김옥균은 그를 만나자 마자 열흘 동안 같이 지내며 의기투합했다고 하고, 아까 언급했던 일본의 고위 종교인 오쿠무라는 이동인의 비범함을 첫 눈에 알아보았습니다.

더욱 이채로운 것은 오만한 고위 외교관 하나부사가 이동인은 자기들과는 다른 인물이라고 인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편 1880년 수신사를 이끌고 일본에 왔던 김홍집은 이동인과 대화한 후 "조선에 이런 남아가 있었단 말인가"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도 합니다. 앞으로 보겠지만 영국 외교관 사토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그를 누가 왜 죽였을까요?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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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우리·NH농협·광주은행 등 우수사례
비대면 지원 확대, 원스톱 종합컨설팅 등
금감원, 7월부터 위기관리 지원체계 운영

[서울=뉴시스] 박은비 기자 = 금융감독원은 20일 오후 유튜브 생방송으로 '자영업자에 대한 은행권의 경영컨설팅 우수사례 발표회'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금융권의 지원 참여와 자영업자의 이용 제고를 도모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이날 행사에서 "코로나19 장기화에 대비해 기존의 창업·금융상담 위주 컨설팅을 '위기관리' 지원 중심으로 확대·재편했다"며 "온라인 시장 진출 등 사업구조 전환을 통해 자영업자들의 매출·수익 회복을 돕고 필요시 사업정리와 재기에도 도움을 주는 위기관리 컨설팅을 실시 중"이라고 밝혔다.

윤 원장은 또 "자영업자들이 컨설팅을 이해하고 도움을 받아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영업이 활성화되기를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발표회에서는 신한··우리·NH농협·광주은행 등 4개 은행이 컨설팅 우수사례를 발표했다. 신한은행은 기존 신한소호(SOHO)사관학교 프로그램을 비대면으로 전환해 지속적으로 상담한 사례를, 우리은행은 매출이 급감한 자영업자에게 온라인 판매방식으로 업태 전환을 유도한 사례를 설명했다.

농협은행의 경우 농업 후계자 꿈 실현을 위해 창업부터 컨설팅하다가 코로나19로 납품 중단을 겪자 판로 개척까지 지원했고, 광주은행은 바쁜 자영업자를 위해 세무·회계관리, 마케팅기법, 특별대출까지 원스톱 종합컨설팅을 제공한 사례를 제시했다.

한편 금감원은 지난 7월2일부터 코로나19 장기화에 대비해 '소상공인·자영업자 코로나19 위기관리 지원체계"를 구축·운영 중이다. 지원 상황 분석을 위한 현장지원단을 설치하고 연체 사전방지를 위한 '개인사업자대출119' 활성화, 위기관리 컨설팅 강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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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디스플레이 직원들이 스마트폰용 OLED 패널의 주사율 변화를 테스트 기기로 점검하고 있다./삼성디스플레이 제공

애플이 지난달 발표한 아이폰12 시리즈는 4종 전 모델이 5G(5세대 이동통신)를 지원하고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를 탑재했다. 중국 비보는 올해 X30 시리즈 3종 전 모델에 OLED를 탑재했다. 올 하반기에 출시된 레노4와 레노4 프로는 각각 6.4인치 OLED와 6.5인치 OLED를 적용했다.

글로벌 스마트폰 회사들이 올 하반기에 OLED를 탑재한 신제품을 선보이면서 OLED 패널 공급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의 스마트폰용 OLED 출하량도 증가하고 있다.

20일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 3분기 삼성디스플레이의 스마트폰용 OLED 출하량은 9985만대다. 일부 스마트폰 신제품 출시가 예년보다 늦어졌고, 고가 스마트폰 수요가 연말에 회복되면서 삼성디스플레이의 올 4분기 OLED 출하량은 역대로 가장 높은 수준인 1억2435만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올 4분기 스마트폰 OLED 수요의 80%에 해당하는 물량이다.파워볼

주요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OLED 채용을 고가 제품에서 중저가 제품까지 확대함에 따라 삼성디스플레이의 내년도 OLED 출하량이 올해보다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톤파트너스는 지난달 발행한 ‘모바일용 OLED 출하동향 분석’에서 화웨이 제재 영향으로 중국 패널업체인 BOE가 타격을 입는 반면 삼성디스플레이의 고객사인 오포, 비보, 샤오미는 내년도 OLED 구매량이 늘 것으로 전망했다.

[설성인 기자 seol@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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